[책/기록] 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

 

닥터 셰퍼드, 죽은 자들의 의사 : 헝거포드 대학살에서 다이애나 비 사망사건과 9.11까지,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말하는 삶과 죽음 

리처드 셰퍼드 저, 한진영 역 

갈라파고스 출판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는 동안 내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죽음은 전혀 생각지도 않을 때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이 주는 좋은 것들을 음미하려 노력한다.그날 저녁에는 공원에서 즐겁게 놀았고, 목욕을 시켜주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즐겼고, 침대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준 다음 잘 자라고 키스해주며 행복을 느꼈다. p.117

 

시신을 대할 때는 그들이 얼마 전에는 인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과 슬픔에 빠진 유족들, 친인척에게 예를 갖춰야 한다는 것도요.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내서 그분들을 돕는 겁니다. 우리는 증거를 찾아낼 것이고, 죽은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은 잊고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검사할 이 시신은 말은 없지만 목격자이자 우리의 교사인 겁니다. p.157-158

 

1980년대에 영국에서는 대형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런데 이런 사고 중 정확히 사고라고 할 만한 건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였다. 거의 대부분은 시스템 결함이 원인이었다. 아니면 그 시기에 자립이라는 전후 가치관이 개인과 국가 사이의 이익 충돌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리고 기존 시스템이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이에 대한 사고 방식도 바뀌고 있었다는 것이다. (...) 사건들은 매번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는 사고 원인을 찾아 분석함에 따라 각 사건은 의미 있는 발전으로 이어졌다. 당국은 낡은 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했고, 사회적으로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문화가 꽃폈으며 고용주들은 위험과 책임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방침,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위험의 예방과 책임이 갑자기 더 중요해졌고 안전한 환경은 경영의 추가 요소가 아니라 필수 요소가 되었다. p.217-218

 

법정에서 험악한 상황을 만나면 나의 스승은 알렉산더 포프가 되었다. 오래 전 아버지가 내 사전에 공들여 써주신 시구는 내가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삼가는 태도로 말할 것이며, 나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인정할 것이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오류를 정정해줄 때는 그들의 감정을 생각하여 아량 있는 태도로 대할 것이며, 틀린 주장에 대해서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동의하지 말 것이며, 적절한 지적은 순순히 받아 들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양편으로 갈리는 법정 시스템 때문에 공격성과 편협함, 진실을 외면하려는 태도를 자주 목격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원칙들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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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읽는 법의학자 책인데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당황했다. 책 분류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을 정도로 에세이 같았는데 에세이로 분류를 하기엔 실제 사건·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나 사회 시스템 관련으로도 많이 언급을 해서... 음... 그랬다... 솔직히 중간에 덮을 뻔 했지만 글을 잘 쓰여져 있어서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갔다. 확실히 아시아권(그래봤자 두 권밖에 안 읽었지만)과는 영어권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법의학자 특유의 분위기나 시선, 마음가짐은 국적과 상관 없이 동일한 것 같다.

 

 

2020.11.28 ~ 2020.11.28 완독